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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그는 토요일 오후가 되서야 돌아왔다.
금요일 아침, 일찍 시드 제복을 말쑥하게 차려 입고 나간 그는, 비가 오는 우중충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살짝 미소를 보여주었었다. 언제나 시드 사령관으로써 바쁜 그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번 일요일에는 억지로 끌고서라도 에데아 아주머니의 고아원으로 놀러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안젤로도 좋아했을 것이다.
그는 여러 사람들의 손에 들려 라그나 로크를 내렸다.
하얀 천을 무겁게 두르고, 젤, 퀴티스, 셀피 그리고 아바인의 손에 정중하니 들린체.
우두커니 서 있는 내 앞으로 느리게 다가온 그는, 흠뻑 젖은 나무 상자에 담긴 체 내 앞에 내려졌다.
하얀 천 위에 수 놓아진 발람 가든의 문장이 파랗게 시려왔다.
셀피는 필사적으로 변명을 했다.
학생들을 인선하여 벌여진 시드 수련 도중에 사건이 일어났다고. 혼자서 라면 충분히 견디고도 남았겠지만, 그는 사령관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끝까지 남았었다고.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눈물로 범벅이 된 새파랗게 어린 학생들이 줄줄이 비공정에서부터 내려왔다.
내 발치에 놓인 관을 보고는 다시 와락 울음을 터트려 버리는 어린 아이들. 앵앵거리는 울음소리가 고막을 찔러왔다.
무너지듯 관 위로 엎드린 내 손아귀에 하얀 천이 잡혔다.
이럴리가 없어.
이럴리가 없는데
“…스퀄…”
숨 막히는 가슴에서 겨우 짜낼 수 있었던 건 이름 하나.
사랑하는 사람.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
과거를 현재를 미래를 모두 부정하면서도 나 만을 사랑해 주던 사람.
“스퀄…!”
후들 후들 떨리는 손이 하얀 천을 쓰다듬었다. 길게 매끄러운 포물선을 그리며 잔잔히 수평선을 되찾는 하얀 물결. 내 손가락 사이로 날카롭게 날이 선 푸른 발람 가든의 문장이 나를 비웃고 있었다.
네가.. 이 안에 있다고…??
“사, 사령관님이…! 죄송해요…! 죄송해요, 정말.. 정말 죄송해요…”
숨을 쉴수가 없어
“리노아…리노아, 울어도 돼. 미안해.”
너희들이 있었으면서. 너희들이 있었으면서, 왜 그를 죽게 내버려 뒀어?
동료잖아. 친구잖아. 등을 맡겨도 되는 믿음직한 친우라고 했잖아.
“리노아…”
누군가가 억눌린 목소리로, 냉정한 목소리로, 유능한 시드의 목소리로 말을 전했다.
“라이언하트 사령관은 장렬하게 전사했다. 네 슬픔을 덜어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그는 끝까지 유능하고 훌륭한 시드였다.”
유능한 사령관.
훌륭한 시드.
그런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바랜 영광과 이름없는 명예와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거짓 울음을 울어준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다고.
더 이상 내 앞에 따스한 등이 없는데
더 이상 내 옆에서 잡아줄 손이 없는데
아아.
소리 내어 울고 싶었것만
아아-
떨리는 내 몸 위에 손 올려 놔 주는 이는 없었다.
역시 스퀄은 이 하얀 상자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리라.
사령관으로서. 시드로서.
장렬히 전사하여.
꽝!
거칠게 관뚜껑을 제껴열었다. 날라가는 무거운 나무판대기.
거무죽죽하니 변해버린 살결.
손 뻗어 만져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아서. 소름만 끼쳐와서.
그저 기가 막혀서.
못 밖힌 내 시야를 한 가득 메우는 것은 그의 몸위에서 나를 비웃고 있는 가든의 문장이었다.
죽어버렸어.
시드 였기 때문에.
용서 할 수가 없었다.
그를 사지로 몬 그들을. 순순히 그 사지로 걸어나간 그를.
쭉 뻗은 손 바닥의 마력이 시리게 응축되었다가 한 순간에 폭발했다.
그 자리에 있는 시드들은 휘몰아 치는 마력의 폭풍에 갈갈이 찢겨져 순식간에 죽었다.
철 모르는 견습들도, 함께 웃고 울던 친우들도.
쏟아지는 폭우가 파랗게 질려버린 입술을 얼렸다.
다음은 가든이었다. 라그나 로크를 탄 체로 발렘으로 날아갔다.
길지 않은 살육과 셀 수 없는 생명.
남은 두 가든의 협공이 따랐고 흩어진 시드 조무래기들도 [전쟁]에 가담했다. 극악무도한 마녀를 상대로 벌이는 세계의 세 번째 대전쟁.
왜 그는 나를 남겨두고 시드로서 전장에 나가야 만 했던 것일까.
왜 그는 시드라는 단 하나의 이유 만으로 사지로 몰려 처참하게 죽어야 했을까.
영광을? 평화를? 모두를 위하여…?
그런 입에 발린 말 따위. 그런 화려하게 포장된 변명 따위.
왜
왜
왜 죽어버린 거야.
진득히 고인 피웅덩이에 빠진 다리는 빠지지 않는다.
계속, 계속 깊이 잠겨들 뿐이었다.
모두가 너무도 증오스러웠기 때문에.
그를 앗아간 그들을 죽이고
나를 죽이려고 하는 그들을 죽이고
나를 행복하게 해줬던 그들을 죽이고
내 이름이 생각 나지 않을 때까지
내가 더 이상 왜 싸우고 있는지 망각할 때 까지.
감당할 수 없는 마력에 영생의 저주에 걸린 체 몸이 뒤틀리고 침식되어 더 이상 옛날 천진난만 했던 시절의 모습은 찾을 수 없을 때까지.
더 이상 그런 것이 있었는지도 모를 때까지.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을 때까지.
어느날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구일까.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물론 시드를 증오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언제인지 모를 저 옛날에서부터 알고 있었던 단 하나의 진실.
이름이 없구나, 그러고 보니.
그 옛날 전설 속의 마녀의 이름을 따 왔다.
알티메시아.
성을 지었다. 어딘지 모르게 ‘이곳 이어야만 한다’라는 생각이 드는 장소에다.
- 나를 찾아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외진 대륙의 끝
- 여기 있을게
흐트러지는 꽃잎이 허망한 곳.
-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가슴 아픈 곳.
- 약속이야
몇 백년이 지났는지 모른다.
이미 시드는 거의 전멸했다.
바퀴 벌레 마냥 자꾸 기어들어오는 흰색 제복의 시드 조무라기들 만을 빼놓고는 살아 남은 자는 없었다.
하지만 더. 더. 몸은 더 많은 시드의 피를 원하고 있었고, 나는 살아 남은 시드를 찾아 헤매었다. 이미 [현실]은 페허가 되 버린지 오래. [미래]는 분명히 내가 만들어낸 시드가 없는 세계.
하지만 아직 [과거]가 남아있었다.
[정션-머신 엘론]을 찾아냈다. 과거로 갈수 있는 기계. 하지만 부족했다. 힘이 부족했다.
혀를 차며 우선은 옛 대국 [에스다]의 마녀의 몸 위로 빙의했다.
이 시대에는 시드가 넘쳐났다. 몸 서리 치도록 많은 시드들. 하지만 아니다. 시간 그 자체를 없애 버리면. 시간 그 자체를 없애 버리면, 세상이 멸망해 버리면 그거야 말로 확실하게 시드를 없애는 방법이 아닐까.
기억이 허용하는 시간동안 처음 지어본 미소였다.
기계의 원본인 계집아이를 찾아 사람을 풀었으나 소득은 적었다. 계집에게 신경을 너무 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이없이 인간들의 계략에 빠져 봉인이 되고 말았다.
눈빛이 매우 거슬리는 남자였다.
눈빛도
턱선도
콧날도
존재 자체가 무척이나 거슬렸던 남자.
“메트론…”
같은 눈빛.
같은 얼굴. 같은 공기로 ‘나’에게 말을 거는 청년이었다.
꽃잎이 한장 한장씩 뜯겨나가는 화려했던 ‘가든’의 봉우리 속에서 만난 사람.
정말로 거슬려서, 존재 자체가, 말투 하나가, 칼을 잡는 자세 조차도 정말로 눈물이 날 정도로 화가 나서, 무턱대고 공격을 해대었다.
뼈 아픈 실수. 두번이나 지다니! 인정 할 수 없었다. 이를 갈며 다시 몸을 바꾸어 나의 ‘기사’에게 다시 명령을 내렸다. 세번째 실수는 없으리라.
겨우 진정이 된 후에나, 이 새로운 ‘몸’을 돌아볼 생각이 들었다.
이상했다.
거부 반응도 없는, 그저 평온한, 고요한.
불쾌한 느낌.
형용할 수 없이 불쾌하고, 너무 편하다 못해 불편하고,
가증스러운 순진함에 치가 떨리고 어리숙한 명랑함에 화가 치솟고 정말로 너무 너무 아늑하고 편안해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서
두렵고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도저히 그럴 상황이 되지 못했다. 이 새파랗게 어린 몸은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을 내게 주었고, 나는 도망치고만 싶었다.
잠시 잠을 자기로 했다.
줄 곳, 따뜻했던 것 같았다.
[미래따윈 필요없어-
지금만을 원할 뿐이야. 지금이 이대로 멈춰버렸으면 좋겠어, 그냥, 여기서 당신과 영원히-]
나른한 환청.
검은 날개를 활짝 핀체 옥좌에 앉아 나는 생각했다. 아주 오랫동안 건드리지 않았던, 내 기억속 금기의 영역.
나는, 누구일까.
어째서, 이러고 있는걸까.
까만 깃털이 사뿐- 공기를 타고 텅빈 무도회장으로 춤추며 내려갔다.
- 네가 여기서 제일 잘 생겼는걸-
무심히 내게는 너무 큰 날개를 뒤돌아 보았다. 핏물을 너무 많이 빨아들인 듯이 검붉은 날개. …예전에는…좀더 다른 색이 아니었나…?
- 정말? 복사본이 아니라, 진짜를 내가 가져도 되는거야?
까만 손톱을 길게 기른 내 손에 끼어진 반지를 보았다.
그리버. 최강의 G.F. 내 머리 속 가장 깊은 곳을 점령하고 앉아, 끝없는 안식과 망각의 축복을 가져다 준 나의 수호신.
기억나지도 않는 저 옛날부터 나를 지켜준 나의 라이언.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나의 기사.
…누구에게서…?
- 떨어지는 유성
상념은 깨졌다. 결계가 발동하는 감각에 나는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고개를 내렸다.
드디어 기어들어 왔군. 버러지 같은 시드들.
쓸데없는 생각들은 나중에. 시드가 없는 세상을 만든 후에 해도 늦지 않으리라. 나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옥좌에 느긋하게 기대었다.
대리석 홀에 떨어진 새까만 깃털이 흔들렸다.
[스퀄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 스퀄의 검이 내 심장을 뚫을거야.
스퀄만이, 나를 죽일 수 있을거야.]
그리고 마지막 문이 열렸다.
하나씩, 내 밑 문가에 정렬하는 그들이 혐오스러웠다. 더러웠다.
“…시드. 시드, 시드, 시드, 시드!!!”
치가 떨리는 이름. 뼈속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린 증오는 내 몸을 떨려오게 만들었다. 그 근원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저주받을 시드! 버러지 같은 것들이 주제를 모르고 꿈틀대는 구나! 내 오늘 확실히 종지부를 찍어주지! 모두다 죽어버려!”
뜨겁게 달궈진 살기가 목을 죄어오고 있었다. 그래…그리고 시작은…
“너희들부터 시작하지. 마음껏 발버둥 쳐보라고.”
모두다 죽일 자신이 있었다.
파랗게 시린 검신이 몸속 깊은 곳으로 후벼파고 들어왔다.
“아아악!”
손목을 튕겨 표독스럽게 쏘아낸 마력이 청년의 어깨를 강탕했다. 뒤로 나동그라진 그가 일어나는 동시에 옆의 소녀에게서 큐라가가 발동된다. 나는 잠시 뒤로 몸을 뺄 수 밖에 없었다. 총탄을 막아주는 실드도 이제 조금 밖에 버티질 못한다.
이럴 수가.
수치심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런 버러지들에게 이런 꼴을 당하다니! 입가의 피를 거칠게 닦아내며 나는 몸을 떨었다.
이럴 수는 없었다. 조금만…조금만 더 하면 온 세상의 시드가 다 사라지는 건데…
“…그리버!!!”
사납게 손에서 반지를 빼며 마력을 끌어모았다. 이미 피폐해질데로 피폐해진 몸에서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마력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그리버. 나의 가디언.
너라면 내 소원을 들어주겠지? 이런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세상에서, 시드같은건 다 없애 주겠지? 다시는 ‘장렬한 전사’운운은 못하게 만들겠지?
- 추억따윈 되고 싶지 않아. 과거형으로 내 이야기를 하게 놔두지 않겠어!
누가…언제 한 얘기더라…?
졌다.
나를 위해 싸워주던 그리버가 졌고, 거기에 광분한 내가 정션한 그리버와 나의 합성체까지도 져버렸다.
믿을 수가 없어.
몸뚱아리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넘쳐나던 마력은 격렬한 전투에 드디어 주인을 먹어버리고 말았다. 영혼체만을 마력으로 보호한체, 나는 마지막 싸움을 하고 있었다.
상관없어. 죽는다고 해도, 죽는다고 해도
이런 세상, 이런 시드, 이런 아픔 다 없애 버릴 수 있다면
“죽어라 마녀!”
파동탄이 급소를 노리고 정확히 강타했다. 인간이었다면 치명타였겠지만…영혼체인 나에게 그런 것은 급소니 하는 것은 무의미 하겠지.
저기 서 있는 저 소녀도 마녀였다.
마녀와 시드.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나란히 서있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눈에 거슬렸다. 갈갈이 찢어버린뒤에 허망히 남은 잔재에 목 놓아 웃고 싶었다.
어덯게 저렇게 순진하게
명랑하게
새하얀 날개를 활짝 피고
저렇게 행복하게-
소녀의 앞을 청년이 막아섰다.
기사.
아주 오래전에 들어 본 것 같은 낡은 단어.
온 몸으로 그녀를 보호하겠다는 듯이 막아선 자세에 빈틈은 전혀 없었다.
너덜 너덜 바래진 기억의 한 구석에서부터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라왔다.
나에게도…나에게도…
[아포칼립스!]
무시무시한 중압감이 그들을 덥치는 것과 동시에 나는 소녀에게 전력을 날렸다. 용서할 수 없어. 저런 순진함 따위,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챙!
푸른 불꽃이 춤추는가 했더니 바로 전력은 칼날의 검신을 타고 분산되었다.
같은 불꽃을 지닌 눈이 나를 직시하고 있었다.
- 나도…옛날에는…
…저 시드의 이름이…뭐였더라…?
[무너지고 있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솟구쳐 올라오는 애원은, 이미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을…기억하라…”
- 네가 이 곳에서 가장 잘 생겼는걸
텅빈 무도회장
“너의 느낌…말…감정…”
멈추어버린 공기가 멤도는 입술
- 내 옆에만 꼭 붙어있어
하얀 백사장의 모래가.
몇백년에 걸쳐 파도만 넘실댔던 그 해변의 모래가.
- 약속이야?
한알갱이
한알갱이씩
모래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깊숙이 파여있던 숨겨진 맹세를 다시 덧쓰려는 듯이.
- 약속이야.
달싹거리는 입술사이로
힘 없는 신음이 세어나왔다.
- 날 좋아하게 되라~ 좋아하게 되라~
- 밤바람에 흩날리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검은 어둠을 가로지르는 빛나는 유성에 미소를 머금고 테라스의 차가운 돌난간을 밀어내며 너를 향해 돌아 돌아 돌아
너무나도 사랑하는 네 얼굴에 부드럽게 떠오르는
- 리노아
추락.
“시간은…”
울고 싶었다.
“기다려주지 않아.”
울고 싶었다.
“아무리 손안에 잡아두고 싶어도…
울고 싶었다…
“…모래처럼 흘러나가고야 말아.”
떨어지는 별똥별
“죽어라 마녀-!!!”
흩트러진 꽃잎
“그리고…”
그리고.
- 마녀라도…괜찮아?
- 마녀라도…괜찮아.
네 웃음-
아아.
핑 도는 미소-
몸을 가차없이 양등분 하는 시린 건 블레이드의 칼날.
- 스퀄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 스퀄에 손에라면, 스퀄의 검이 내 심장을 가른다면.
- 스퀄의 손에라면, 죽어도 좋을거야.
악독한 마녀의 심장을 꽤뚫은 기사를 축복이라도 하듯.
순백의 섬광이 터져나와 온 세상을 메꾸었다.
아아. 이렇게 되는 거였구나.
결국은 이렇게 시작되는 이야기였어.
결국은 이렇게 끝나고 말 이야기였어.
흘러내리지 않는 눈물을 이미 처참하게 찌그러진 눈망울 안 가득 머금은체
리노아는 손을 뻗었다. 아지랑이 일렁이듯 닿지 않는 곳에 그가 있었다.
나의 기사. 나의 사랑. 나의…
그리고 그 옆의 순백의 나.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는 거리.
- 닿을 수 없는 손가락 끝
그리고 사라져가는 [현실]
- [마녀 얼티마시아-!]
[미래]
- 내밀어 보인 손위에서 빛나는 그리버
[과거]
스퀄.
딱딱히 굳은 내 존재를 지워버릴려는듯 사나운 기세를 몰아 이제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시간]은 좁아졌다.
다들 자신의 시간의 찾아 돌아가 버린 이 장소에서, 더 이상 설 곳이 없는 이 시간에서.
나는…어디로…?
- 여기서…기다릴께.
- 약속이야.
참담히 꿇어앉아
나는 오열했다.
수백년간 꺼내보지 못했던 네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
더 이상 타오르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게 될때까지, 정말로 네가 내 앞에 있기라도 하듯이.